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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풋살팀 해체 위기를 딛고 일어선 이창환 감독

[심층인터뷰] 풋살팀 해체 위기를 딛고 일어선 이창환 감독







<#>풋살 팀 스타FS(FS서울의 전신)를 이끌고 있는 이창환 감독


열정에 이유는 없다. 마음가는대로 흘러가다보면 그 길이 곧 정답이 될 수도 있다.

풋살 팀 스타FS(전 FS서울)를 이끌고 있는 이창환 감독도 그랬다. 전형적인 축구 선수 출신인 이 감독은 우연한 계기로 풋살의 매력에 빠졌고, 지금까지 풋살과 함께 하고 있다. 축구 20년, 풋살 20년. 이창환 감독의 인생을 장식하는 두 가지 키워드다.

물론 지금은 풋살인으로서의 꿈이 더 크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간절해지는 법이다. 이창환 감독은 아직까지 한국 스포츠에서 비주류 격인 풋살이 언젠가는 모두의 관심을 받고, 모두가 즐기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 믿음을 향해 고군분투 중이다. 몰라주는 이가 더 많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풋살은 ‘컬쳐 쇼크’였다
시작은 축구였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뒤 프로로 진출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이창환 감독은 현실적이었다. “축구 선수 생활을 20년 정도 했죠. 대학을 졸업한 뒤 상무로 갔는데, 상무에 있을 때 프로팀으로부터 제안받은 계약금이 저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한일은행을 선택했어요. 그 때가 1995년도였죠. 그 당시만 해도 은행 팀은 대우가 꽤 좋았거든요.”

은행 팀에서 뛰던 선수들은 은퇴 후 자연스레 은행원으로 진로를 바꿀 수 있다. 사실상 고연봉의 안정적인 직장이 정년까지 보장되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창환 감독은 은행원의 길을 가지 않았다. “저도 선수 생활 말기에 은행에 들어갔지만 한 달 만에 그만뒀어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이 저와는 맞지 않더라고요. 사무실에 갇혀있는 것도 싫었고요. 지금까지 은행에서 계속 버티는 제 동기들은 아마 연봉이 1억 쯤 됐을 거예요.”

그렇다고 축구 지도자를 꿈꾼 것도 아니었다. 은퇴 후 잠깐의 학원 축구 지도자 생활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특히 학부모들과의 관계가 스트레스였다. 고민의 연속이었던 어느 날, 김대길 현 한국풋살연맹 회장이 손을 내밀었다. “홍천에서 풋살 대회를 여는 데 같이 대회 운영을 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풋살과의 첫 인연이었다.

국민생활체육 전국풋살연합회 창립을 준비 중이었던 김대길 회장은 1997년 홍천에서 전국 춘계 무궁화배 풋살대회를 열었다. 이창환 감독도 김대길 회장을 도와 대회 운영에 집중했다. 이렇다 할 보수는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풋살 행정이라는 새로운 분야는 이창환 감독의 도전 의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자연스레 풋살 지도자를 향한 꿈이 생겼다. “풋살 행정을 하면서 경기들을 쭉 지켜봤는데, 풋살이 워낙 템포가 빠르다 보니 축구가 상대적으로 느려 보이는 거예요. 제게는 컬쳐 쇼크나 다름없었죠. 테니스처럼 눈이 막 왔다 갔다 하는, 풋살에는 그런 재미가 있더라고요.” 풋살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K3리그 서울유나이티드의 수석코치와 감독 생활을 하는 등 지도자로서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올린 이창환 감독은 2009년, 생활체육 강팀인 에듀윌 풋살클럽과 송파 풋살클럽이 연합해 탄생한 FS서울의 초대 감독으로 FK리그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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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0시즌 FK리그 개막전. 이창환 감독이 이끄는 FS서울은 우승후보 중 하나였다.


- 우승후보의 이면, 마음고생 심했던 날들
2009년 1월 시범리그를 치렀던 FK리그는 FS서울을 포함한 풋살 전문 클럽 6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그해 말 정식 FK리그를 열었다. FS서울은 FK리그 우승후보 중 하나였다. 실제로 첫 해에는 결승까지 올랐지만 전주매그풋살클럽에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고, 다음 두 해(2010-2011 시즌, 2011-2012 시즌)는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강력한 우승후보였지만 팀 운영은 결코 쉽지 않았다. “훈련은 1주일에 두 번 했어요. 초창기 FK리그가 용인에서 열렸는데, 서울에서 용인까지 훈련을 하러 다녔죠. 훈련할 수 있는 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먼 원정 훈련을 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풋살 구장은 전용 바닥재를 필요로 한다. 1면에 1억 원 정도 되는 고가 제품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모든 체육관에 풋살 전용 바닥재가 깔린 게 아니기에 FS서울로서는 원정 훈련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

“대회가 열리면 한국풋살연맹에서 직접 경기장에 바닥재를 깔지 않은 이상, 바닥재가 깔린 체육관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관했죠. 그래서 일반 체육관에서 훈련한 적도 많았어요. 그런데 체육관 측에서는 풋살 훈련을 한다고 하면 대관을 잘 내주지 않았어요. 슈팅이 워낙 강하다 보니 기물 파손될 수 있다고 꺼려했었죠.”

무엇보다 선수들에게 월급을 주지 못한다는 건 이창환 감독의 마음속 빚이었다. 당시 FS서울은 이창환 감독 지인의 후원으로 선수들에게 승리 수당과 해외 전지훈련 기회를 제공했지만 따로 연봉제를 시행할 상황은 되지 못했다. “선수들은 생계를 위해 직업을 따로 갖고 있어야 했죠. 그래서 일이 끝나는 저녁 시간 때나 이른 아침 시간에 모여서 훈련했어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요. 초창기부터 풋살을 한 선수들은 정말 많은 고생을 했죠. 따로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본인들의 돈과 시간을 투자해 경기에 임한 거니까요.”

우여곡절도 많았다. “세 번째 시즌까지 1번의 준우승과 2번의 우승을 경험했죠. 그 때까지는 좋았어요. 이후 팀 내부에 문제가 생겨서 선수 등록마감 3일 정도를 남기고 8명의 선수가 한꺼번에 빠져나갔죠. 그 때부터 2년 정도는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어요. 다행히 2년 고비를 잘 넘기고 팀을 다시 갖췄는데, 이후에는 계속 준우승만 하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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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환 감독은 선수 연봉제를 꿈꾼다. 선수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운동해야 풋살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다.


- FS서울에서 스타FS로
진짜 위기는 지난해 찾아왔다. “초창기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FS서울을 후원해주셨던 분이 제가 잘 아는 선배였어요. 저 하나만 바라보고 7년 동안 꾸준히 거액을 후원해주셨죠. 하지만 나가는 돈은 많은데 들어오는 이익이 없으니 그분도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한계를 느끼신 거죠.”

후원이 끊기면서 팀도 위기에 몰렸다. 자칫하다간 풋살의 전통 명문 팀이 그대로 없어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지난해 FK리그가 끝난 후 딱 석 달, 정말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팀이 없어지는 건 제 자신이 용납할 수 없기에 어떻게든 스폰서를 구해 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위기의 끝에서 길이 열렸다. 스포츠 용품 브랜드인 스타스포츠에서 이창환 감독에게 팀 인수를 제의한 것이다.

“스타스포츠로부터 제의가 들어온 이후 세 달 동안 스타스포츠 쪽과만 협의를 진행했죠. 사실 다른 쪽에도 다리를 걸쳐놓고 있으면 편한데 그러지는 않았어요. 그만큼 절실했죠. 다행히 제가 최종적으로 요구하는 조건에 잘 부합돼 계약이 체결됐어요. 3억 5천 정도의 예산으로 시작하고, 차후에는 선수 연봉제를 적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요. 물론 예전보다는 훨씬 좋아진 셈이죠. 저와 사무국장, 세 명의 선수가 스타스포츠 직원으로 취직 돼 남자 팀과 여자 팀을 둘 다 운영하게 됐으니까요. 팀명도 FS서울에서 스타FS로 바꿨고요.”

선수 연봉제는 이창환 감독의 오랜 꿈이었다. 다행히 스타스포츠라는, 이창환 감독으로서는 최고의 파트너를 만난 덕분에 꿈을 향해 한 걸음씩 전진 중이다. “한국 풋살의 발전을 위해서는 FK리그에 있는 모든 팀들이 연봉제로 전환되어야 해요. 현재 한국 생활체육에서는 풋살의 저변 확대가 꽤 잘 이뤄져 있거든요. 기본이 튼튼한 셈입니다. 그럴 때 FK리그 팀들이 연봉제로 전환한다면 풋살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선수들도 많아지겠죠. 현재는 그 시스템이 되지 않으니, 리그를 끝나면 두 달 정도를 소득 없이 쉬어야 하는 거예요. 생계에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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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살 월드컵 진출은 이창환 감독의 마지막 꿈이다. 사진은 지난 2015년 나세르 살레 전 풋살대표팀 감독(가운데)과 함께 풋살대표팀 훈련을 준비 중인 이창환 수석코치의 모습


- 연봉제, 풋살월드컵...나의 꿈이자 풋살의 꿈
이창환 감독이 20년 동안 풋살에 매진한 이유는 결코 축구를 배척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풋살과 축구는 분명 다른 특징과 재미가 있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서로 보완하면서 함께 가야한다는 생각이 분명했다. “예전에는 축구하는 자식을 둔 학부모들이 풋살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요즘은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어렸을 때 풋살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내고 거기서 실력을 인정받아 풋살 팀으로 뽑혀가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풋살을 통해 아이들의 축구 재능을 보는 셈이죠. 한국도 이제 해외랑 비슷하게 가고 있어요.”

“생활체육에서는 이미 다수의 인구가 풋살을 즐겨하거든요.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분명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어요. 중학교 정도 되는 레벨의 클럽에서는 어렸을 때 풋살을 했던 선수들을 많이 뽑아가요. 풋살은 큰 틀에서 봤을 때 축구 발전을 위해 존재한다고 봐도 무관하죠. 다만 한국은 풋살과 축구의 레벨이 현재로서는 차이가 있기에, 그 차이를 메우는 게 우선입니다. 축구와 풋살의 레벨이 균등하게 올라오면 상호간에 더 활발하고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겠죠.”

풋살의 레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선수 연봉제 전환뿐만 아니라 세계무대 경험도 필수다. 아직까지 한국 풋살 대표팀은 풋살 월드컵에 진출한 적이 없다. 이창환 감독의 마지막 꿈은 감독으로서 풋살 월드컵 무대를 밟는 것이다. “5년 후에는 우리 팀 선수들에게 월급을 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그 다음에는 풋살 대표팀 감독으로 풋살 월드컵에 가고 싶어요. 2010년부터 꾸준히 풋살 대표팀에서 감독과 수석코치 생활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한국은 풋살 월드컵에 나간 적이 없잖아요. 그 무대를 꼭 밟고 싶어요. 거기까지 가게 되면 제가 풋살 지도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한 것 같아요. 그 다음엔 단장으로 물러나서 흐뭇하게 경기를 지켜봐야겠죠(웃음).”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기에 이창환 감독은 가능성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냉정히 말해 지금으로서는 풋살 월드컵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해요. 어렵죠. 하지만 구조가 잘 갖춰지면 아시아 상위 클래스 팀들을 따라잡는 건 순식간이라고 봅니다. 그 구조라는 건 앞서 말한 연봉제겠죠. 연봉을 받고 선수들이 안정적인 상황에서 팀에 매진해야 인재들도 더 많이 나오는 법이니까요. 이란이 지난해 월드컵에서 3위를 기록했거든요. 이란 정도로만 한국 풋살이 성장한다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 내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글=안기희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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